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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가 겁에 질린 두 아이를 품에 꼭 안고 있는 가운데, 집 안은 어둡고 조용하며, 반 쯤 열린 문 밖으로는 정체불명의 남성 실루엣이 서 있어 위협적인 상황을 암시하는 장면
    '가족'이라는 말은 누군가에게는 두려움 그 자체입니다.

     

    가정폭력과 친족 성범죄 – 한국과 미국 법 제도의 구조적 차이

    1. 서론 – 가정은 보호의 공간인가, 침묵의 감옥인가

    “이 일은 그냥 가족끼리의 다툼일 뿐이에요.” “아버지도 술이 취하셔서 그랬던 거고요.”
    “신고하면 집안이 더 엉망이 될까 봐 무서웠어요.”

    이 말들은 뉴스 속 인터뷰가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피해자들이 스스로를 설득하기 위해 되뇌는 말들입니다.

     

    가정은 법적으로 보호받는 최후의 공간이자, 사회적으로 신성시되는 울타리입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가정폭력과 친족 성범죄는, 그 폐쇄성과 관계의 위계 속에서 누구보다 조용히, 그러나 잔인하게 반복됩니다. 가해자는 ‘가족’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있고, 피해자는 ‘가족이니까’라는 이유로 말하지 못합니다. 심지어 법과 제도마저도 피해자의 침묵을 요구하는 듯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때는 친족 간 성폭력은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만 수사할 수 있는 ‘친고죄’에 해당했으며, 심지어 피해자가 가해자와 합의하면 처벌을 면할 수 있는 ‘불처벌 조항’까지 존재했습니다. 그 결과, 수많은 피해자들은 집 안에서 법의 도움 없이 생존하는 법을 먼저 배웠습니다. 부엌에 숨겨둔 휴대폰으로 몰래 경찰에 메시지를 보내야 했고, 문을 걸어 잠그고 울음을 삼킨 채 잠든 날들을 기억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피해자들은, 끝내 그 집을 빠져나오지 못한 채 신고하지 못한 이유를 유서에 남기고 삶을 마감하기도 했습니다.

     

    가정폭력과 친족 성범죄는 단순히 한 사람의 일탈이나 분노 조절 실패가 아닙니다. 그것은 관계의 위계, 사회적 침묵, 그리고 제도의 무관심이 결합된 구조적 범죄입니다. 그리고 그 피해는 단지 육체적 상처로 끝나지 않습니다. 피해자는 자기 존엄을 잃고, 사회적 신뢰를 잃고, 가족이라는 말에 평생 트라우마를 느끼며 살아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는 여전히 “그 집안 문제다”, “괜히 더 크게 만들지 말자”는 시선으로 이 문제를 외면해 왔습니다. 경찰은 출동 후 “화해하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가고, 법원은 “처벌보다는 가족 회복이 우선”이라는 이유로 기소유예를 결정하기도 합니다.

     

    그 어떤 범죄보다 개입이 늦고, 처벌이 약하며, 피해자가 떠나야 하는 구조가 지금까지의 법이었습니다. 이번 형법 시리즈 9편에서는 ‘집 안에서 발생하는 범죄’가 왜 가장 조용하게, 가장 오래 반복되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한국의 가정폭력법과 친족 성범죄 관련 형법 구조를 분석하고, 미국법과 비교해 어떤 점에서 법의 개입이 늦고, 보호가 부족한지를 짚어보겠습니다.

    2. 한국의 법 – 가해자를 위한 집, 피해자를 내쫓는 법

    한국에서 가정폭력은 오랫동안 ‘처벌보다는 화해’의 대상이었습니다. 실제로 1997년 처음 제정된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은 제목부터 '처벌'과 '화해'의 이중적 태도를 담고 있었고, 초기 법 시행에서는 형사처벌보다 상담, 보호처분, 접근금지 명령 등의 '가정 회복' 조치가 우선시 되었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피해자의 안전보다 가정이라는 제도 자체를 유지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그 결과 피해자가 다시 같은 공간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상황이 반복되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한국 법에서 가정폭력 피해자에게 실질적인 주거 분리 권한이나 신속한 격리 보호 조치가 미비하다는 점입니다.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를 해도, 가해자에게 형사처벌 대신 훈방, 상담연계, 보호관찰 명령 등이 내려지는 경우가 많고, 임시조치로 접근금지나 퇴거명령이 내려져도 실제 가해자가 이를 무시하거나, 제재가 약한 탓에 무력화되는 사례가 비일비재합니다. 그 사이 피해자는 여전히 같은 집에서 생활해야 하며, 결국 집을 나가거나 쉼터로 피신하는 선택을 강요받습니다.

     

    또한, 친족 성범죄에 대해서도 과거 오랫동안 ‘친고죄’ 조항이 유지되어 왔다는 점은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2013년에 이르러서야 친족 간 성범죄에 대해 고소가 없어도 수사가 가능하도록 법이 개정되었지만, 그 이전까지는 피해자가 가해자인 가족을 직접 고소해야만 수사 개시가 가능했으며, 이는 피해자에게 이중 고통을 안겼습니다.


    부모, 삼촌, 오빠, 할아버지 등 가족 내 위계 관계 속에서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가 직접 고소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여전히 가해자와 합의 시 처벌이 유예되거나 감형되는 구조는 살아 있습니다. 법원이 가정폭력에 대해 '처벌보다는 교육과 중재를 통한 개선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있는 상황에서, 피해자는 처벌보다 화해를 종용받는 환경에 놓이게 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고통을 축소하거나 침묵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립니다.

     

    또 하나의 구조적 문제는 피해자 보호조치가 임시적이며 제한적이라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쉼터 보호 기간은 평균 6개월을 넘기기 어렵고, 그 이후에는 피해자가 다시 원래 집이나 불안정한 거처로 돌아가야 하는 일이 흔합니다. 그리고 그 시점에 맞춰 가해자는 보호관찰 기간 종료 또는 형량 종료로 다시 일상으로 복귀합니다. 이 구조는 결국 피해자에게 다음과 같은 선택을 강요합니다. “당신이 떠나라. 당신이 조심해라.” 가정폭력과 친족 성범죄에 있어 한국의 형법은 아직도 피해자를 안전하게 분리하기보다는, 피해자가 떠나기를 기대하는 법입니다.

    3. 미국의 법 – 즉각 격리, 피해자 보호 중심 시스템

    미국은 가정폭력과 친족 성범죄에 대해 한국보다 훨씬 단호하고 즉각적인 대응 체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그 핵심은 단 하나, “피해자를 먼저 보호하라”는 원칙입니다.

     

    가해자의 사회적 지위나 가족 관계, 초범 여부보다도 피해자가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면 법은 즉시 개입해야 한다는 철학이 제도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주마다 세부 법령이 다르지만, 대부분의 주에서 가정폭력은 단순한 가정사나 경범죄가 아닌 형사범죄(felony or misdemeanor)로 간주됩니다.

     

    특히 피해자가 직접적인 폭행을 당하지 않았더라도 위협, 강압, 통제, 정신적 학대 등의 정황이 확인되면 경찰은 즉시 출동해 가해자를 체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집니다. 이는 의심만 있어도 수사가 시작될 수 있는 구조로, ‘피해자의 심리 상태’를 증거보다 우선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제도가 바로 "Protection Order(보호명령)" 시스템입니다. 피해자가 경찰이나 법원에 요청하면 즉시 접근금지, 주거지 격리, 통신 차단, 직장 접근 금지 등 강력한 보호조치가 내려지며, 이를 단 한 번이라도 위반하면 형사처벌이 가능합니다.


    이러한 명령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법적으로 아무런 관계가 없는 상태라도 적용되며, 가족관계나 결혼 여부는 보호의 전제가 되지 않습니다. 또한 가해자의 물리적 분리가 법의 우선 조치입니다. 가정폭력 신고가 접수되면, 경찰은 사건 발생 당일에 가해자를 체포하거나 임시 격리조치를 실시하고, 그 후 판사는 24시간 이내에 보호명령 청문회를 열어 장기 격리 여부를 결정합니다.

     

    이 구조는 피해자가 가정 내에 머물면서도 안전하게 일상을 유지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으며, “왜 피해자가 떠나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발생하지 않도록 시스템적으로 차단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법은 친족 간 성범죄에 대해서도 매우 단호합니다. 특히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범죄는 연방정부 차원에서 별도 보호체계가 적용되며, 주정부 산하의 아동보호국(CPS, Child Protective Services)이 즉각적으로 개입해 가해자와의 접촉 차단, 피해자 심리치료, 대리 보호자 지정 등을 집행합니다.

     

    법원은 이 절차에서 형사재판과 별개로 피해자의 권익을 우선 보장하는 행정적 보호명령을 내릴 수 있으며, 가해자가 가족이라 하더라도 양육권 박탈, 접근금지, 영구적 거주제한 조치를 명령할 수 있습니다. 미국은 특히 재범률을 예방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가해자에게는 감형 대신 심리치료, 폭력통제 교육, 재범 방지 교육 이수를 명령하고, 명령 불이행 시 형을 가중하거나 실형으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엄격한 조건을 부과합니다. 이러한 교육과 처벌 병행 시스템은 단순히 법적 응징을 넘어서, 재범 가능성을 제도적으로 차단하려는 노력의 일환입니다.

     

    결국, 미국의 시스템은 단 하나의 원칙에 충실합니다. “피해자가 안전해야만, 법이 존재할 이유가 있다.” 그 원칙을 현실에서 구현하는 방식은 한국의 제도와는 비교 불가한 적극적 개입과 피해자 우선주의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4. 비교 분석 – 왜 한국은 피해자에게 떠나라고 하는가?

    가정폭력과 친족 성범죄에 대한 대응 방식은 한국과 미국 모두 법과 제도를 통해 피해자를 보호하겠다는 명목을 내세웁니다.
    그러나 실제 현실에서는 두 나라의 대응 태도와 법 집행 방식 사이에 분명한 방향성의 차이가 존재합니다. 그 차이는 결국, “법이 누구의 입장에서 움직이는가”, 그리고 “위험의 순간에 누가 안전을 우선 보장받는가”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가정의 안정 유지를 우선하는 태도를 취해왔습니다. 가정폭력이나 친족 간 범죄를 개인 간의 문제, 사적 분쟁으로 치부하면서 법은 개입보다 중재와 화해, 가족의 해체 예방에 중심을 두었습니다. 그 결과, 법적으로는 다양한 보호조치와 처벌 규정이 있음에도 실제 집행에 있어서는 “가해자를 체포하기보다는 피해자가 피하라”는 식의 현실이 고착화되어 왔습니다.

     

    예를 들어, 피해자가 긴급하게 가해자와 분리되길 원하더라도 한국에서는 접근금지나 퇴거명령이 즉시 실행되지 않고, 수일의 법적 절차를 요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사이 가해자는 집에 그대로 있고, 피해자는 스스로 짐을 싸서 떠나거나 지인의 집 혹은 쉼터로 긴급히 피신해야만 합니다. 이 구조는 “피해자 중심 법제도”라는 말을 무색하게 만들며, 결국 법이 가해자보다 피해자의 자유를 제한하는 아이러니한 결과를 낳습니다.

     

    반면, 미국은 피해자의 신체적, 정신적 안전을 무엇보다 우선합니다. 경찰은 사건 현장에서 피해자의 진술만으로도 임시 보호명령을 즉시 발부할 수 있으며, 피해자 대신 경찰이 피해를 입증하고, 가해자와 분리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가정폭력은 더 이상 ‘가정 안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개입해야 하는 공공 범죄로 규정된다는 점에서 접근 방식이 다릅니다.

     

    또한, 미국은 “피해자에게 떠나라고 하지 않는다”는 철학을 제도로 실현합니다. 가해자의 퇴거, 접근금지, 위치추적기 부착, 감시 등은 피해자의 주거 안전을 최우선으로 보장하기 위해 적극 활용됩니다. 그에 비해 한국은 여전히 피해자의 이탈을 보호로 간주하고, 피해자가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오지 못하도록 만드는 이중적 구조를 반복합니다.

     

    더불어 친족 성범죄에 대한 처벌 기준도 현격히 다릅니다. 미국은 가족 관계에 관계없이 성범죄를 전면적 형사범죄로 취급하고, 가해자가 부모, 친척, 보호자일 경우 오히려 더 중형이 선고되는 방향으로 작동합니다.


    반면 한국은 과거의 친고죄 문화와 가정 내 합의 종용 문화가 남아 있어 아직까지도 처벌 수위가 낮고, 가해자의 회복 가능성에 초점을 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피해자 보호 정책의 실효성에서 큰 격차를 만듭니다. 미국의 피해자는 국가의 개입 아래 현실적 보호와 법적 정의를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구조에 놓여 있지만, 한국의 피해자는 여전히 법의 문턱에서 머뭇거리며, “신고해 봤자 뭐가 달라지겠냐”는 체념에 사로잡히기 쉽습니다.

     

    결국 이 모든 차이는, 법이 누구를 바라보는가의 시선에서 기인합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 피해자의 고통을 덮는 것이 더 낫다고 보는지, 그 고통을 드러내고 단죄하는 것이 진짜 평화로 가는 길인지에 대한 국가의 입장 차이입니다.

    5. 결론 –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덮을 수 없는 폭력

    가정은 보호의 공간이어야 합니다. 가족은 지켜야 할 대상이지, 두려워해야 할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수많은 피해자들이 가장 안전해야 할 공간에서 가장 심각한 폭력을 경험하고, 그 고통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수년, 수십 년을 견뎌냅니다. 그리고 법은 그 오랜 침묵을 뒤늦게 인식할 뿐, 미리 개입하지도, 먼저 보호하지도 못합니다.

     

    가정폭력과 친족 성범죄는 가장 오래된 범죄이자, 가장 침묵 속에 숨겨진 범죄입니다. 그리고 이 범죄는 단순히 개인 간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법 감수성과 국가 시스템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입니다. 한국은 법률적으로 가정폭력과 성범죄에 대한 규정을 가지고 있지만, 그 집행력과 현실 적용에는 많은 허점이 존재합니다. 피해자는 여전히 자신이 나가야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에 놓여 있고, 가해자는 가족이라는 이유로 처벌을 감경받거나 보호받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사회의 시선조차 여전히 냉정합니다.
    “집안일인데 왜 경찰까지 불렀냐”, “가족끼리 그런 걸 신고하냐”, “네가 먼저 잘못한 건 없었냐”는 말들이 피해자의 입을 막고,
    결국 법정에서조차 “용서할 마음이 있냐”는 질문이 따라붙습니다. 이런 질문들은 피해자에게 또 다른 폭력이 됩니다. 그들은 이미 수년간 침묵하며 참아왔고, 법 앞에 서는 순간에도 다시 자신의 고통을 증명해야 하며, 그 증거가 부족하면 “믿기 어렵다”는 판결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반면 미국은 비교적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폭력은 가족 관계 여부와 상관없이 무조건적 보호와 개입의 대상이며, 법은 피해자의 안전을 가장 먼저 확보한 뒤, 가해자의 처벌, 치료, 격리 여부를 단계적으로 판단합니다. 이 차이는 결국, 피해자의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결정적 요소가 됩니다.

     

    법은 감정이 아닌 기준으로 작동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기준은 반드시 현실의 고통을 반영한 정의여야 합니다. 단순히 법 조항만 만들어놓고, 그 조항이 지켜지지 않는 상황은 법이 존재하는 척하는 것일 뿐입니다. 가족이라는 말은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단어지만, 누군가에게는 두려움 그 자체입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인정해야 하고, 법은 그 두려움 속에 숨어 있는 피해자를 먼저 찾아야 합니다. 피해자가 떠나지 않아도 되는 사회, 가해자가 먼저 사라지는 사회, 법이 가장 먼저 문을 두드리는 사회가 진짜 정의로운 사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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