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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디지털 성범죄 – 형법으로 본 딥페이크와 불법촬영물 처벌 구조
1. 서론
그녀는 어느 날 우연히, 자신의 이름을 검색하다가 충격적인 결과를 마주했습니다. 이름과 함께 뜬 영상의 썸네일에는 그녀의 얼굴이 뚜렷이 박혀 있었고, 영상 제목은 명백히 성적인 내용을 암시하고 있었습니다. 클릭해 본 그 영상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가 실제로 등장하는 것처럼 정교하게 조작된 딥페이크 성착취물이었습니다. 몸은 다른 사람이었지만 얼굴은 분명히 그녀였고, 목소리까지 합성된 그 장면은 허구라는 단어로는 설명되지 않을 정도로 사실감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이미 '그런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이 디지털 성범죄의 실상입니다. 피해자는 실제 접촉도 없었고, 영상 촬영에 동의한 적도 없었지만, 세상은 그 사람을 ‘그 영상 속 존재’로 인식합니다. 그리고 이런 피해는 단지 개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수준을 넘어서, 사회적 생명과 정신적 존엄까지 무너뜨리는 폭력입니다. 더욱 무서운 것은, 이 모든 일이 물리적 접촉 없이, 단지 기술과 악의만으로 가능해졌다는 사실입니다.
디지털 성범죄는 더 이상 특정 계층이나 일부 유명인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 SNS 계정만 있으면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고,
- 얼굴 사진 한 장만 있어도 영상으로 가공될 수 있으며,
- 한번 유포된 콘텐츠는 사실상 영원히 삭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피해자가 이렇게 완전히 무너지는 동안, 가해자에게는 어떤 처벌이 내려지고 있을까요? 이 글에서는 한국과 미국의 형법 체계 속에서 딥페이크 성범죄, 불법 촬영물 유포, 디지털 스토킹, 사이버 협박 등의 문제에 대해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비교하고, 지금 우리가 기대하는 ‘정의’라는 것이 실제로 법의 영역 안에 존재하는가를 점검해 보려고 합니다. 기술은 이미 법을 앞질렀고, 피해자의 고통은 실시간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2. 한국의 디지털 성범죄 대응 구조
한국에서 디지털 성범죄는 비교적 최근에 본격적으로 법적 대응이 시작된 분야입니다.
특히 2019년 이후 ‘n 번 방 사건’이 사회적 충격을 주면서 정부와 국회가 대대적인 법 개정을 추진했지만, 그 이전까지는 디지털 공간에서 발생한 성범죄에 대해 기존 형법과 성폭력특별법만으로는 충분히 대응하기 어려운 구조였습니다.
그 결과, 수많은 피해자들이 신고를 꺼리거나, 신고해도 실질적인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아 2차 피해에 노출되었고, 피해 영상은 여전히 온라인에 떠돌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현행 법률에서 디지털 성범죄에 적용 가능한 가장 핵심 조항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4조(카메라 등 이용촬영죄)입니다. 이 조항은 동의 없이 성적 부위나 신체를 촬영하거나, 촬영된 영상을 유포·판매·소지하는 경우를 처벌 대상으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법 적용의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딥페이크 영상처럼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촬영물에 대해서는, 과거엔 이 조항이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실제 촬영된 것이 아니므로 촬영죄가 아니다’라는 논리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2020년, 디지털 성범죄 처벌 강화를 위한 ‘n 번 방 방지법’이 통과되었습니다. 이 개정안에서는 합성물(딥페이크 포함)을 포함한 촬영물도 불법 촬영물로 간주하고, 유포·저장·판매 행위 모두를 처벌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또한 정보통신망법과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형법상 명예훼손·협박·강요죄도 함께 적용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이 보완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판결을 들여다보면, 실형 선고는 드뭅니다.
서울동부지방법원 2021 고단 2469 사건에서는, 20대 남성이 지인 여성의 사진을 도용해 딥페이크 음란물을 제작·유포했지만,
재판부는 “피고인이 초범이고 반성하고 있으며, 영상의 삭제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이유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 영상은 이미 수십 개의 해외 사이트로 확산된 상태였고, 피해 여성은 직장과 가족 관계를 포기하다시피 했습니다.
한국은 디지털 성범죄에 대응하는 법률 자체는 만들어졌지만, 적용 과정에서의 인식과 판결의 온도차가 여전히 존재합니다.
가해자가 기술적 접근을 용이하게 활용하고, 영상 삭제는 거의 불가능한 상황에서, 실형 없이 집행유예나 벌금으로 그치는 판결은 피해자에게는 '법적 방치'로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들을 위한 지원 체계도 매우 제한적입니다. 영상 삭제 지원센터, 여성가족부의 피해 회복 지원 프로그램이 존재하긴 하지만, 신속성·전문성·지속성 면에서는 여전히 미흡하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특히 딥페이크 영상의 경우, 피해자가 직접 사이트에 삭제 요청을 해야 하거나, 증거 확보 과정에서 2차 트라우마를 겪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결국, 법은 존재 하지만 그 법이 기술보다 느리고, 가해자보다 유약하고, 피해자보다 멀리 있습니다. 이것이 지금 한국의 디지털 성범죄 현실이며, 그 간극을 메우는 것이 다음 시대의 형법이 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입니다.
3. 미국 사례 – 딥페이크와 리벤지포르노에 대한 형사 대응
미국은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 한국보다 상대적으로 빠르고 공격적인 법적 대응을 보여온 국가입니다.
특히 피해자의 명예, 사생활, 정신적 고통을 중대한 범죄로 간주하는 문화적 배경과, 성범죄자에 대한 사회적 제재가 강한 구조 속에서, 불법 촬영, 리벤지포르노(보복성 음란물 유포), 딥페이크 제작 및 유포는 중범죄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선, 미국은 ‘리벤지포르노’를 포함한 비동의 음란물 유포에 대해 주 단위 형사법을 중심으로 규제하고 있습니다. 캘리포니아 주는 2013년, 미국 최초로 비동의 성적 이미지 유포죄(Non-Consensual Pornography Law)를 도입했고, 이후 뉴욕, 텍사스, 플로리다 등 대부분의 주에서 유사한 법률이 제정되었습니다. 리벤지포르노 가해자에 대해 최대 5년의 징역형, 성범죄자 등록(Megan’s Law)까지 부과될 수 있어, 한국과는 처벌 강도가 현격히 다릅니다.
실제 사례로, People v. Bollaert, 2014는 리벤지포르노 사이트 운영자에게 중형을 선고한 대표 판례입니다.
케빈 볼라트(Kevin Bollaert)는 사용자가 타인의 성적 사진을 등록할 수 있는 사이트를 운영했고, 동시에 사진 삭제를 명목으로 금전을 요구하는 사이트를 따로 운영하며 피해자들을 협박했습니다.
이 사건에서 캘리포니아 법원은 사기·신상정보 무단 게시·정신적 피해 유발 등을 종합 판단해, 그에게 징역 18년형을 선고했습니다. 이 판결은 리벤지포르노가 단순 온라인 문제를 넘어서 형법상 중대한 사회 해악임을 선포한 사례로 널리 인용됩니다. 딥페이크에 대한 법적 대응도 미국은 한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2019년 텍사스는 세계 최초로 딥페이크 영상의 제작·배포를 형사처벌 대상으로 명시한 법안을 통과시켰으며, 이후 뉴욕주는 ‘딥페이크 음란물 금지법’을 제정해, 합성 이미지의 제작만으로도 처벌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연방법 차원에서도 2020년 DEEPFAKES Accountability Act가 발의되어, 합성 영상에 대한 'Watermark(워터마크)' 부착 의무, 불법 딥페이크 유포에 대한 징역형과 민사책임 규정을 명시하였습니다.
특히 미국은 형법적 처벌 외에도 피해자 회복을 위한 사회적 장치가 잘 갖춰져 있습니다. 사이버 성폭력 피해자 전담 변호 지원, 영상 삭제 전문 기관 연계, 정신건강 치료까지 연계된 구조로, 피해자가 수사와 회복 과정에서 최소한의 2차 피해로 대응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완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미국은 법적 판단 기준에서 ‘피해자 관점’을 매우 강하게 적용한다는 점입니다.
영상이나 사진이 실제인지 합성인지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당사자의 동의 없이 유포되었고, 사회적 명예에 피해를 입혔는가에 초점을 둡니다. 이는 디지털 성범죄의 본질을 ‘기술 문제’가 아니라 인격권 침해와 정신적 폭력 문제로 인식하는 구조적 태도로, 형벌 강도뿐 아니라 법의 정의 방향에서도 한국과 큰 차이를 보입니다.
물론 미국에서도 딥페이크 음란물은 여전히 다 잡아내기 어렵고, 수사기관의 접근 속도나 피해 영상 회수는 과제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딥페이크는 성폭력’이라는 사회적 공감대와 법적 정의의 방향은 명확해 보입니다.
4. 비교 분석
디지털 성범죄는 기술의 발전과 함께 폭발적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한때는 카메라를 숨기거나 몰래 촬영하는 수준의 행위가 범죄의 중심이었지만, 이제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장면조차 AI로 조작하고 유포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가해자는 피해자 근처에 한 번도 가지 않고도, 그 사람의 얼굴을 도용한 성착취물을 전 세계로 퍼뜨릴 수 있습니다.
이러한 범죄는 ‘접촉 없는 폭력’이라는 새로운 유형의 위협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법은 여전히 ‘기존 범죄의 연장선’으로만 디지털 성범죄를 다루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디지털 성범죄 기술은 2025년에 더 발전하고 있지만, 법은 2005년에 멈춰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한국과 미국의 법을 비교해 보면, 이 간극은 더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한국은 ‘형식적 구성요건’ 중심
한국은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 다양한 법적 틀을 갖추기 시작했지만, 그 대부분이 형법이나 성폭력특례법의 확장판 형태입니다.
즉, 현실에 발생한 범죄를 기존 조문에 억지로 끼워 맞추는 방식이 많습니다. 딥페이크 영상의 경우, 실제 피해자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한동안 불법 촬영죄로조차 기소되지 않았고, 영상이 외국 서버에 올라가 있는 경우 삭제나 추적도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처벌 수위도 낮습니다. 유포, 판매, 협박에 해당하는 영상임에도 초범이라는 이유만으로 집행유예가 선고되거나, 벌금 300만 원 이하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사이 피해자는 사회적 생명과 존엄을 상실하고, 영상은 수년째 온라인을 떠돌고 있습니다.
또한, 피해자 지원 시스템은 존재하지만 ‘형식적이고 제한적’입니다. 가해자는 ‘초범 감경’을 기대할 수 있지만, 피해자는 ‘삭제 불가능한 기록’과 평생의 트라우마를 떠안습니다.
미국은 ‘피해자 관점 + 사전 차단’ 중심
미국은 기본적으로 디지털 성범죄를 성적 자기 결정권 침해와 공공의 위협 행위로 간주합니다.
피해자의 주관적 피해 정도와 사회적 파급력을 중심에 두고 판단하며, 리벤지포르노나 딥페이크 유포가 단순한 영상 유출이 아닌 형법상 폭력 행위라는 점을 명확히 합니다.
법적 판단에서도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한국은 ‘촬영 여부’나 ‘실제 존재 여부’가 기준이라면, 미국은 ‘동의의 유무’와 ‘피해자의 인격권 침해 여부’를 기준으로 삼습니다. 그래서 실제 인물이 등장하지 않아도, 피해자의 얼굴이 등장하고 사회적 평판이 손상되었다면 딥페이크 역시 실물 영상과 같은 처벌 대상이 됩니다.
미국은 또한 법 제정 속도가 빠르고, 주마다 맞춤형 대응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갖습니다. 텍사스, 뉴욕, 캘리포니아 등은 딥페이크나 리벤지포르노 전담 법률을 신속히 통과시켰고, 연방 차원에서도 딥페이크 규제 법안이 지속적으로 논의되고 있습니다.
요약 비교
항목 | 한국 | 미국 |
---|---|---|
딥페이크 규제 시점 | 2020년 이후 (n번방 방지법 계기) | 2019년부터 주별 도입 |
구성요건 기준 | 촬영 여부 중심 | 동의·피해자 관점 중심 |
처벌 강도 | 집행유예·벌금 중심 | 실형 + 신상공개 가능 |
피해자 보호 | 삭제 지원 있지만 한계 | 심리치료·법률지원 통합 운영 |
법 제정 방식 | 중앙정부 주도, 느림 | 주별 입법, 반응 빠름 |
결국, 디지털 성범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법이 기술을 따라가는 속도입니다. 지금처럼 가해자가 AI로 합성하고, 글로벌 플랫폼에 올리는 동안 법이 여전히 '촬영자'나 '피지컬 카메라'를 전제로 움직인다면 피해자 보호는 불가능해집니다.
법은 절차를 따라야 하지만, 피해자의 고통은 실시간으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성범죄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더 이상 “기존 법을 조금 수정해서 대응하자”는 식의 접근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법적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합니다.
5. 결론
디지털 성범죄는 단순히 '온라인상의 범죄'가 아닙니다. 그것은 현실의 시간과 감정을 파괴하는 가장 비현실적이고도 실제적인 폭력입니다. 피해자는 "현장"이라는 공간 없이 피해를 당하며, "증거"라는 이름으로 자신이 합성된 이미지를 마주하고, "삭제"라는 말로 희망을 갖지만, 인터넷 서버에는 영상이 복제되고 확산되며, 그의 사회적 평판과 인간관계는 회복할 수 없는 손상을 입습니다.
그런데 법은 안타깝게도 아직도 가해자의 권리, 절차적 정당성, 입증 요건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 사이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정보 삭제를 요청하며, 경찰서에서 영상 존재 여부를 증명하기 위해 스스로 검색을 해야 하고, 화면 캡처를 모아 제출하며, 또 다른 2차 가해를 감수합니다.
가해자는 “합성했을 뿐”이라는 말로, “유포한 건 내가 아니다”라는 말로, “초범이고 반성한다”는 이유로 벌금형이나 집행유예를 받습니다. 하지만 피해자는 단 한 번의 영상이, 단 몇 초의 합성이, 평생 지워지지 않는 낙인이 되어 남습니다.
법은 중립을 지켜야 하지만, 그 중립이 피해자의 삶을 외면하는 구조적 침묵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디지털 성범죄는 새로운 기술이 아니라, 오래된 폭력을 새로운 방식으로 구현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법도 기술에만 대응할 것이 아니라, 그 폭력의 본질을 꿰뚫고 피해자를 우선 보호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