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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소녀가 어두운 골목에서 조용히 고개를 돌려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는 흑백 이미지. 천진난만하면서도 슬픔이 깃든 눈빛이 어린아이의 보호받지 못한 현실을 상징함.
    여덟 살 여자 아이...

    미국과 한국의 미성년자 성폭행범 처벌 비교

    1. 서론: 사형이 잔인한가, 형량이 가벼운 게 더 잔인한가

    밤 10시가 되면 귀갓길을 서두르는 아이가 있다. 길 건너 주택가에는 범죄 전과자가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어른들은 그 집 앞을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범죄자에게 징역 12년형을 선고했던 법원은, “사회에 복귀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이름은 조두순이었다.

     

    그가 성폭행한 피해자는 겨우 8살이었다. 사람들은 분노했고, 텔레비전 앞에서 이를 갈았으며, 청와대 청원 게시판은 수백만 명의 서명으로 들끓었다. 그러나 그 분노는 법조문 위에서 쉽게 무뎌졌다. 가해자는 감형을 받고, 반성문 몇 장으로 ‘갱생 가능성’을 인정받았고, 피해자는 영영 아이였던 자신을 잃어버렸다.

     

    한편,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는 같은 시기에 아주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2003년, 루이지애나에서 한 남성이 8살 의붓딸을 잔혹하게 성폭행한 사건이 있었다. 그 남성은 사형을 선고받았고, 주 대법원은 그 결정에 동의했다. 피해자는 살아남았지만, 법원은 “이 범죄는 피해자에게 살인 이상의 고통을 주었기에 사형이 정당하다”고 판결문에 명시했다.

     

    2008년, 미국 대법원은 해당 판결을 뒤집는다. “피해자가 사망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형은 지나치다.” 하지만 바로 지금, 플로리다와 테네시 같은 일부 주는 다시 그 사형의 문을 열고 있다. 12세 미만 아동에 대한 강간범에게 사형을 선고하겠다는 새로운 법들이 의회를 통과하고 있다. 그들은 말한다. “어린이를 강간한 범죄자는 죽음으로 응징받아야 한다.”

     

    이번 글은 그 이야기를 다룰 것이다. 법의 이름 아래 벌어진 대조적인 처벌, 죽음 보다 깊은 상처를 남기는 범죄에 대한 각 국가의 법적 반응. 우리는 형법을 비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묻고 싶은 것이다. “정의는 누구의 편이어야 하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의 생명을 짓밟은 자에게 면책의 기회를 줄 만큼 우리는 여전히 관대해야 하는가?”

     

     

    2. 미국: 미성년자 성폭행범 사형 판례와 현재 흐름

    그는 이른 아침에 체포되었다. 침대는 아직 따뜻했고, 부엌에는 전날 저녁 식사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 집 안에서 벌어진 일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2003년 3월, 루이지애나의 작은 마을에서 8세 여자아이가 심하게 출혈한 채 병원으로 실려왔다.
    의사는 충격에 말을 잇지 못했고, 경찰은 그 아이가 자신의 의붓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듣게 되었다.

     

    그 남자의 이름은 패트릭 케네디(Patrick Kennedy)였다. 그는 자신이 범행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처음에는 부인했지만, 결국 DNA 증거와 피해자의 진술 앞에 모든 것이 드러났다. 이 사건은 미국 전역을 충격에 빠뜨렸다. 단순한 성폭행이 아니었다.

    의사들은 피해자의 생식기와 항문이 영구적으로 훼손되었으며, 정신적 외상은 “살아 있는 죽음”에 가까운 상태라고 진단했다.

     

    루이지애나주는 당시 주법에 따라, 피해자가 사망하지 않았더라도 12세 미만 아동을 성폭행한 경우 사형을 선고할 수 있는 법률을 유지하고 있었다. 배심원단은 주저하지 않았다. “이 남자는 죽어야 한다.” 그리고 실제로, 케네디는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이 사건은 곧 연방대법원까지 올라가게 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피해자가 아직 사망하지 않은 범죄의 가해자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것이, 미국 수정헌법 제8조가 금지하는 ‘잔혹하고 이례적인 형벌’에 해당하는가?

     

    2008년 6월 25일, 미국 연방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5 대 4 판결로 사형은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대법원은 이렇게 밝혔다.

    “피해자가 사망하지 않은 사건의 가해자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것은 형벌의 비례성을 벗어난다.

    이는 미국 사회가 보편적으로 용납하지 않는 형벌이며, 피해자가 생존했을 경우 사형은 과도한 처벌이다.”

     

    이 판결은 당시 사형을 유지하고 있던 루이지애나, 몬태나, 오클라호마, 사우스캐롤라이나 등의 법률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고,
    이후 미국 전역에서 피해자가 사망하지 않은 아동 성범죄에 대해 사형은 위헌이라는 기준이 확립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다시 움직이는 주들이 생겨나고 있다.

     

    2023년, 플로리다주는 12세 미만 아동을 성폭행한 범죄자에 대해 사형을 선고할 수 있는 새로운 법률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대법원의 기존 판례와 정면으로 충돌하지만, 플로리다 주는 대법원 구성의 변화와 사회적 분위기의 반전을 기대하고 있다. 2024년에는 테네시 주에서도 유사한 입법이 이루어졌으며, 알라바마 주도 2025년 상반기 중 최종 입법을 앞두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단순한 처벌 강화가 아니다. 이것은 미국 사회가 다시 묻고 있는 것이다. “죽이지 않았다고 해서, 그 범죄가 용서될 수 있는가?” “한 어린 아이의 심신을 찢고, 평생의 삶을 파괴한 범죄자에게 가석방 없는 종신형조차 과분한 것 아닌가?” 미국 내 보수 성향의 주들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사형이 필요하다”로 정리하고 있다. 

    3. 한국: 유아·아동 성폭행범, 그 가벼운 형량의 실태

    그날 이후, 아이는 밤에 잠을 자지 못했다. 불을 끈 방 안에 낯선 그림자가 스며드는 환영에 몸을 떨었고, 작은 소리에도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다. 병원 기록에는 ‘회복 불가 수준의 외상’이라는 표현이 적혀 있었지만, 법정에서는 그보다 더 차가운 말이 들려왔다.
    “피고인의 음주 상태, 반성문, 초범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징역 12년을 선고합니다.”

    2008년 12월, 대한민국을 뒤흔든 사건이 있었다.


    8살 여아를 화장실로 끌고 가 강간한 범죄자, 조두순. 그는 피해자의 생식기, 항문, 직장을 모두 파열시키고도 단 12년 형을 선고받았다. 국민은 분노했고, 언론은 연일 "아이보다 범죄자의 인권이 더 중요한 나라"라고 비판했으며, 청와대 청원 게시판은 마비 직전까지 치달았다.

     

    그러나 그로부터 12년이 흐른 2020년 12월, 조두순은 예고한 대로 출소했다. 그를 막을 수 있는 법은 아무것도 없었다. 피해자의 가족은 이사를 가야 했고, 경찰은 그를 감시하기 위한 예산과 인력을 늘렸다. 하지만 피해자는 그때도, 지금도, 국가로부터 ‘진정한 보호’를 받은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는 유일한 예외가 아니었다.

     

    2022년 9월, 김근식은 성범죄 5건으로 징역 15년을 살고 만기 출소했다.
    그가 저지른 범죄의 대부분의 피해자가 미성년자였고, 그중에는 13세 미만 아동도 포함되어 있었다. 놀랍게도 김근식은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을 당시에도 성범죄 누범 기간 중이었고, 전자발찌를 찬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음에도 '강간치상'이 아닌 '준강간'으로 재판받았다.

     

    박병화 사건은 더 충격적이었다. 그는 성범죄 전과 14범에 달하는 '연쇄 강간범'이었고, 심지어 전자발찌를 자르고 도망친 후에도 추가 범행을 벌였지만, 여전히 법원은 “신상 공개는 인권 침해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모든 정보를 차단했다.

     

    이쯤 되면 사람들은 묻는다. “이 나라는 도대체 누구의 편인가?” 가해자에게는 반성의 기회를, 재사회화를 위한 상담 프로그램, 심리치료, 주거 보호까지 지원되지만, 피해자에게 돌아오는 것은 "지나간 일이다", 혹은 "법적 절차는 끝났다"는 통보뿐이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지 않은 강간살인범도 존재한다.

     

    2012년 대구에서 발생한 사건에서는, 6세 여아를 성폭행 후 살해한 범죄자가 "우발적이었다"는 이유로 징역 30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지금 복역 중이지만, 향후 가석방 심사 대상이 된다.

     

    한국의 법원은 가해자의 '심신 미약', '우발성', '초범', '반성문', '사회적 유대관계' 등을 형량 감경의 이유로 끊임없이 인용한다. 그러나 피해자의 파괴된 삶, 사라진 유년기, 끝나지 않는 수치심과 불면증은, 그 어떤 판결문에도 제대로 쓰이지 않는다. 그 결과, 오늘날 한국에서는 12세 미만 아동을 성폭행한 범죄자가 20년 미만의 형량을 선고받고, 전자발찌와 보호관찰을 조건으로 사회에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구조가 유지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법이 너무 무겁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이들의 눈을 마주 보면, 우리는 깨닫는다.
    진짜 무거운 것은 피해자들이 평생 지고 살아야 할 고통이고, 진짜 가벼운 것은 그 고통을 만든 자들에게 내려진 형벌이라는 것을.

     

     

    4. 비교 분석: 누구를 보호하는가

    같은 범죄였지만, 나라마다 처벌은 극과 극이었다. 미국 대법원은 “피해자가 살아 있으니 사형은 과하다고” 판단했지만, 일부 주는 “아이를 살리긴 했지만, 그 아이의 인생은 파괴됐다”며 사형제를 다시 추진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조금 다르다. “가해자도 인권이 있으니 10년이면 충분하다.” 피해자는 아직도 밤에 잠을 못 자고 있지만, 가해자는 반성문 몇 장으로 감형을 받고 사회로 돌아온다.

    법이 누구의 편에 서 있느냐는 그 나라의 정의관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우리는 물어야 한다. 이 법은, 진짜로 누구를 지키고 있는가?

    형량부터 다른 두 나라

    항목 🇺🇸 미국 🇰🇷 한국
    법적 기본 형량 평균 25년 이상 (주별 차이 존재) 징역 5~15년, 감형 가능성 높음
    가중처벌 기준 12세 미만 피해자, 상습성, 흉기 사용 등 있지만 실제 적용률 낮음
    사형 허용 여부 피해자 사망 시 가능 / 일부 주는 피해자 생존 시도 허용 재추진 법상 사형 가능하지만 1997년 이후 집행 중단
    가석방없는 종신형 다수 주에서 일반적으로 사용 존재하나 선고 및 집행 극히 드묾
    전자발찌, 신상공개 상습범 및 아동 대상 성범죄에 강제 적용, 거리 제한 엄격 전자발찌 있음 / 신상공개는 제한적, 거리 제한 없음
    재범방지 프로그램 심리진단, 재범위험 분석, 치료형 교정 병행 반성문 및 상담 위주, 치료 프로그램은 미비

     

    미국은 피해자가 사망하지 않았더라도 그 외상의 깊이를 “살인에 준하는 정신적 사망”으로 해석하려는 흐름이 있다.
    플로리다주가 다시 사형을 추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는 살아 있는 피해자보다, 반성문을 쓴 가해자의 말에 더 관대하지 않겠다.”

     

    반면 한국은 판결문에서조차 피해자의 삶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법정에서는 변호사가 말한다. “피고인은 한순간의 충동이었고,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묻지 않는다. “그 아이는, 지금도 두 눈을 뜨고 악몽을 꾸고 있습니다.” 한국의 형사정책은 여전히 “교화”를 중심에 둔다. 법원은 초범임을 이유로 감형하고, 음주 상태를 고려하며, 전자발찌와 보호관찰로 사회로 돌려보낸다. 그리고 피해자들은 사회 속에서 “그 사람과 같은 동네에 살지 않기 위해” 스스로 이주를 고민해야 한다.

    정의는 누구의 편인가

    형법은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말은 옳다. 하지만 중립이 항상 공정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때로는 피해자 편에 서야 하는 중립이 필요하다. 지금의 법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아이를 강간한 범죄자에게 12년형을 주고, 피해자에게 평생의 정신적 형벌을 남기는 나라에서, 법은 가해자 편에 서 있는 것이다. 미국의 시스템이 완벽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은 피해자의 고통을 사형 선고에 근거로 삼을 만큼 그들의 절규를 법정에 앉힌다. 그 목소리를 증거로 삼는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법을 만든 목적을 다시 물어야 한다. 법은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법은 고통받는 사람들의 외침을 외면하는 도구처럼 보일 때가 있다.

    만약 우리가 “법은 누구를 지켜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그때부터 형벌은 단지 숫자에 불과해지고, 정의는 고통에 갇힌 피해자가 아닌, 인권을 주장하는 가해자의 편에 설 것이다.

    5. 결론

    미국은 50개 주가 각기 독립된 법을 가지고 있는 나라다. 대법원은 "피해자가 살아 있다면 사형은 과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플로리다와 테네시 같은 주들은 반기를 들었다. “살려는 뒀지만, 그 아이의 삶은 끝났다”며 사형제를 다시 꺼내 들었다. 이 나라의 법은 지금, 정의를 놓고 싸우는 중이다. 피해자의 고통이 죽음보다 깊을 수 있다는 사실에 법이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이다.

     

    반면, 한국은 싸우지도 않는다. 이 나라는 너무 조용하다. 아동을 성폭행하고도 10년 남짓한 형량을 선고받고, 반성문 몇 줄로 감형을 받고, 피해자보다 먼저 사회에 복귀하는 일이 반복된다. 전자발찌가 감시하지 못한 범죄가 재발되고, “가해자도 인권이 있다”는 말은 법정에선 반복되지만, “피해자도 삶이 있다”는 말은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는다.

     

    두 나라 모두 완전하지 않다. 하지만 둘 중 어느 법이 더 노력하고 있는지는 명확하다. 미국은 지금도 피해자의 목소리를 법정에 앉히려 하고, 한국은 여전히 판결문에서조차 피해자의 삶을 지운다. 법이 누구를 먼저 보호하느냐는 그 사회의 정의의 기준이다. 형법은 단지 범죄자를 처벌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고통에 민감하고, 어떤 절규에 응답할 것인지를 보여주는 국가의 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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