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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사이코패스 범죄 – 심신 미약과 형사책임의 경계
1. 서론 – 사이코패스는 감옥이 아니라 병원으로 가는 걸까?
사이코패스 범죄자에 대한 형사처벌 문제는 오랜 시간 대중과 법조계 모두에서 논란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사이코패스가 정신감정을 통해 병원에 수용되는 모습이 자주 묘사되며, 이러한 이미지는 사이코패스가 마치 일반적인 정신질환자처럼 법적 책임에서 면제받는 존재로 오해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실제 형법은 단순한 정신질환 진단만으로는 형사 책임을 면제하거나 감형하지 않습니다.
특히 사이코패스와 같이 성격장애 범주에 속하는 경우, 법적으로는 ‘책임 능력이 있는 범죄자’로 판단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형법 제10조에 규정된 심신상실 또는 심신 미약에 해당하려면, 범행 당시 행위자가 옳고 그름을 분별하거나 행동을 통제할 수 없을 정도의 정신적 제약 상태에 있었음을 입증해야 합니다. 이는 조현병, 급성 정신질환 등과 같은 질환에서 간혹 인정될 수 있으나, 사이코패스와 같이 판단 능력은 유지한 채 공감 능력이나 죄책감이 결여된 상태는 심신 미약의 요건과는 명확히 구분됩니다.
따라서 사이코패스 범죄자가 감형이나 면책의 대상이 되는가에 대한 문제는 단순한 윤리적 공방이 아닌, 형법상 책임주의 원칙과 심신미약 제도의 본질을 중심으로 분석되어야 합니다. 본 글에서는 심신 미약의 개념과 법적 기준을 정리하고, 사이코패스 범죄자에 대한 형사책임이 어떻게 해석되고 있는지를 한국과 미국의 법제를 비교하는 방식으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2. 심신미약의 법적 기준 – ‘정신질환’과 ‘판단 능력’의 경계
한국 형법 제10조는 심신상실과 심신 미약을 구분하여 규정하고 있습니다. 심신상실자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로, 아예 형사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반면 심신미약자는 일정 부분 인식 능력이 있으나, 판단이나 자제력이 현저히 저하된 상태로 간주되어 감형의 대상이 됩니다. 이 기준은 단순히 '병이 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범행 당시 그 병이 행위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쳤는지가 핵심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법이 정신질환 여부 자체보다 책임 능력에 주목한다는 점입니다. 아무리 정신과 진단명이 있어도, 범죄 당시 범행의 결과를 인지하고 자신의 행동을 조절할 수 있었다면, 이는 감형 사유가 되지 않습니다. 반대로 정신병적 망상 상태에서 현실 인식이 없었다면, 그때는 책임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즉, 법의 눈은 '진단명'이 아니라, 그로 인해 실제로 판단 능력과 충동 억제력이 떨어졌는가에 집중합니다.
일반적으로 조현병, 조울증, 일시적 정신착란 등의 경우 심신미약이 인정될 수 있으나, 이것도 무조건적인 감형은 아닙니다. 병력은 있더라도 범행이 계획적이고 결과를 예측하며 실행되었다면, 감형 없이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법원은 피고인의 정신상태에 대해 정신감정을 통해 객관적 자료를 확보하려 하지만, 해석의 여지가 여전히 많습니다. 특히 피고인이 의도적으로 감정을 이용하거나 병력을 과장하는 경우도 있어, 판사는 정신감정 결과 외에도 범행의 정황, 피고인의 진술, CCTV나 목격자의 증언 등 다양한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합니다.
결국 심신미약은 '판단 능력이 저하된 상태'라는 추상적인 개념 속에 있지만, 실제 적용은 매우 정밀하게 이루어져야 하며, 자칫하면 형벌 회피의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심신 미약의 인정 범위를 보다 엄격하게 보려는 법조계 내부의 분위기도 커지고 있습니다. 특히 피해자 중심주의가 강화되면서, 가해자의 사정을 지나치게 고려해 정의 실현이 훼손되지 않도록 하는 방향으로 해석이 이동하고 있습니다.
3. 사이코패스·소시오패스는 왜 심신미약이 아닌가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는 종종 일반 대중에게 '정신이 이상한 사람', 또는 '무서운 범죄자'라는 이미지로 받아들여지지만, 실제 법적 판단에서는 이들이 심신미약자로 인정받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들은 범죄를 저지를 때 자신의 행위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으며, 계획적이고 조직적으로 행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법적으로 말하는 '책임 능력'이 충분하다고 판단되기 때문입니다.
정신의학적으로 사이코패스(Psychopath)와 소시오패스(Sociopath)는 모두 '반사회적 인격장애(ASPD: 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라는 범주에 포함됩니다. 이는 조현병, 양극성 장애와 같은 '정신병(psychosis)'과는 구분되는 '성격장애(personality disorder)'입니다. 성격장애는 현실을 인식하고 판단하는 능력에는 큰 문제가 없지만, 공감 능력 결여, 죄의식 결핍, 충동성 등의 특성으로 인해 사회적 규범을 무시하거나 범죄를 반복하는 성향을 보입니다.
사이코패스는 이러한 인격장애 중에서도 특히 감정이 없고, 계산적이며,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한 특징을 가지며, 범행을 매우 치밀하게 계획하고 실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소시오패스는 충동적이고 감정 통제가 어려운 경향이 있으며, 때로는 충동적인 분노나 폭력으로 범죄를 저지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두 유형 모두 법적으로는 범죄 당시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음을 인식할 수 있고, 통제 가능성이 있다고 보아, 심신 미약으로 간주되지 않습니다.
미국 형법에서도 이 같은 입장은 분명히 나타납니다. 대부분의 주에서는 '자기 유발적 심신미약'이나 '성격장애'는 책임 면제의 사유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미국 연방 대법원은 사이코패스 성향을 가진 피고인이 심신 미약을 주장하였으나, 그 주장을 기각하고 형사 책임을 인정한 판례들이 다수 존재합니다. 대표적으로 연쇄살인범 테드 번디(Ted Bundy)는 반사회적 인격장애 진단을 받았으나, 범죄 계획성과 책임 능력이 인정되어 사형 선고를 받고 집행되었습니다.
한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경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최근 고유정 사건, 정유정 사건 등에서 피고인이 반사회적 성향을 보였음에도, 법원은 심신 미약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 이들이 범죄 당시 냉정하게 계획을 세우고 실행한 정황이 명백히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범죄를 저지른 뒤 증거를 인멸하거나 사체를 훼손하는 등의 행위는 오히려 '판단 능력'이 명확히 존재했음을 반증하는 요소로 작용합니다.
결론적으로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는 법적으로 ‘정신질환자’가 아니라, ‘책임 능력이 있는 성격장애자’로 분류됩니다. 이들에게 감형이나 병원 수용이 적용되지 않는 이유는, 단순히 질병명이 붙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이들이 자신의 행위가 사회적으로 금지된 것임을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무감각하거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점은 도덕적 문제일 수는 있지만, 형법의 기준인 '책임 능력' 판단에서는 그 기준을 충족합니다.
4. 미국은 왜 사이코패스도 감옥에 보내는가
미국 형법은 책임주의 원칙을 철저히 따르며, 정신질환으로 인한 형사 면책 범위를 매우 제한적으로 해석합니다. 대부분의 주에서는 ‘Insanity Defense(심신상실 면책)’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피고인이 범행 당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었음을 명백히 입증해야 합니다. 이 판단 기준은 영국에서 기원한 ‘맥너튼 규칙(M'Naghten Rule)’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맥너튼 규칙은 1843년 영국에서 발생한 대니얼 맥너튼 사건에서 유래하였습니다. 맥너튼은 정치적 망상에 시달리며 자신이 정부로부터 감시당하고 있다고 믿었고, 이러한 망상 속에서 당시 영국 총리를 암살하려다 실수로 그의 비서를 살해하였습니다. 법정은 그가 정신병적 망상으로 인해 현실 인식 능력을 상실한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판단하고 무죄를 선고하였으며, 그는 정신병원에 수용되었습니다.
이 판결은 영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고, 여왕과 국민의 반발 속에서 형법상 심신상실 면책 기준이 명확하게 정립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범행 당시 피고인이 자신의 행위가 잘못된 것임을 인식하지 못했다면 면책된다’는 맥너튼 규칙입니다.
이 규칙은 이후 미국 다수의 주에서도 채택되어 심신상실에 대한 판단 기준이 되었습니다. 단순한 정신과 진단명만으로는 부족하며, 실제로 판단 능력이 결여되었는지 여부가 핵심입니다. 이에 따라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와 같은 반사회적 인격장애자들은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책임이 면제되거나 감형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테드 번디(Ted Bundy) 사건입니다. 그는 1970년대 미국 전역을 공포에 몰아넣은 연쇄살인범으로, 최소 30명 이상의 여성을 납치·살해한 혐의로 기소되었습니다. 대부분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여성을 대상으로 했으며, 범행 수법은 치밀하고 계획적이었습니다. 번디는 일부러 팔에 깁스를 한 채 여성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방식으로 피해자를 유인하였고, 차량에 태운 뒤 납치·성폭행·살해하였습니다. 범행 후에는 사체를 훼손하거나 특정 장소에 보관하며, 범죄를 반복하였습니다.
그는 1978년 플로리다 대학교 여학생 기숙사에서 두 명을 살해하고 다수에게 중상을 입힌 사건을 계기로 체포되었고, 법정에서는 직접 본인을 변호하며 냉정하고 논리적인 태도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재판 과정에서 '반사회적 인격장애(ASPD)' 진단을 받았으나, 법원은 그의 높은 계획성과 자기 인식 능력을 들어 심신미약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범행 당시와 재판 과정에서 보인 치밀함과 이성적 대응은 오히려 그의 형사 책임 능력을 강화하는 요소로 작용하였으며, 결국 그는 사형 선고를 받고 1989년 전기의자형으로 집행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사이코패스와 같은 성격장애 범죄자에 대해 미국 형법이 어떻게 형사책임을 판단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도덕적 공감 능력의 결핍이 곧 법적 책임의 결여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확인시켜 준 판례로 평가받습니다. 미국은 또한 ‘성격장애자’가 교도소 내에서 일정 수준의 정신건강 치료를 병행할 수 있도록 의료 시스템을 병행 운영하고 있으나, 이들이 형벌 자체를 면하는 일은 없습니다. 범죄 당시의 인지 능력과 판단력, 그리고 통제 가능성 여부가 판단 기준이 되며, 대부분의 사이코패스 범죄자는 이 기준을 충족하므로 처벌 대상이 됩니다.
미국은 사이코패스와 같은 성격장애 범죄자에 대해 일반 범죄자와 동일한 법적 책임을 묻습니다. 형사책임이 있다는 전제 하에 교도소 내에서 정신 건강 치료가 병행될 수는 있지만, 그것이 면책이나 감형의 근거가 되지는 않습니다. 더불어 미국 형법은 자발적으로 유발된 정신 상태에 대해서도 면책을 인정하지 않으며, 성격장애 역시 본인의 삶의 방식에서 기인한 특성으로 간주되어 엄정하게 처벌됩니다.
결국 미국은 ‘정신질환자 보호’보다는 ‘사회 보호’를 우선시하는 형벌주의적 구조를 취하고 있으며, 사이코패스는 공감 능력의 결핍이 아니라 책임 능력의 존재로 인해 형사 처벌의 대상이 됩니다. 이는 미국 형법이 형벌의 목적을 교화보다 범죄 예방과 사회 안전 유지에 둔다는 철학을 보여줍니다.
5. 결론 – 법은 누구를 보호해야 하는가
형법은 단순히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도구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질서를 유지하고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그 중심에는 공정성과 균형이 존재해야 하며, 그 균형은 가해자의 사정에만 치우쳐서는 결코 유지될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심신 미약이라는 법적 제도가 어떤 기준으로 작동하는지, 사이코패스와 같은 특수한 범죄자들이 왜 감형이나 병원 수용의 대상이 될 수 없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 핵심은 바로 ‘책임 능력’에 있으며, 이는 형법이 정의를 실현하는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사이코패스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고,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며, 심지어 범행을 통해 쾌감을 얻는 성향을 보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자신의 행위가 사회적으로 금지된 것임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명확히 인식하고 있으며, 그것을 감추고 위장하며, 철저하게 계획하여 실행에 옮깁니다. 이러한 특성은 ‘공감 능력 부족’이라는 심리학적 진단일 수는 있어도, ‘판단 능력 결여’라는 법적 면책 사유는 될 수 없습니다.
법이 공정하려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기준이 적용되어야 합니다.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형을 줄여주거나, 공감을 못 한다는 이유로 병원에 보내는 식의 판단은, 오히려 법이 공정성을 상실하게 되는 길입니다.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가해자의 불완전함’이 아니라, ‘피해자의 회복 가능성’과 ‘사회 전체의 안전’입니다. 형법은 이 기준을 중심으로 움직여야 하며, 어떤 인격장애나 성향도 범죄 행위에 대한 책임을 가릴 수 있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또한 형벌의 목적은 단지 응보나 교화에 있지 않습니다. 피해자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사회가 신뢰를 회복하고, 더 이상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경계선을 명확히 긋는 데 그 진정한 의미가 있습니다. 사이코패스 범죄자가 감형을 받는 사회는, 결국 피해자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사회입니다. 우리는 그런 사회가 아니라, 정의가 제 기능을 하고, 피해자가 보호받으며, 책임이 분명히 지워지는 사회를 원합니다. '사이코패스의 범죄는 치료의 대상인가, 아니면 처벌의 대상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명확합니다. 그들은 치료가 필요한 존재일 수는 있지만, 무엇보다 처벌받아야 할 책임 있는 존재입니다. 법은 바로 그 사실을 분명하게 선언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