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반응형

    유언장 옆에 놓인 'Child', 'Pet', 'Friend' 라벨이 붙은 작은 집 모형과 금색 열쇠, 상속 대상의 다양성을 상징하는 이미지
    상속은 당연히 가족이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상속 순위 – 누가 상속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

    1. 서론 – “상속은 가족이 받는 거 아닌가요?”

    “상속은 당연히 가족이 받는 거 아닌가요?” 이 질문은 너무나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피를 나눈 사람, 혹은 평생을 함께 살아온 배우자에게 재산이 돌아가는 것. 이것이 많은 사람이 상속을 떠올릴 때 갖는 ‘상식’ 일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현실에 닥쳐보면, 이 상식은 법 앞에서 다르게 작동합니다.

     

    가령 부모가 유언장 없이 사망했을 때, 자녀 중 한 명이 이미 사망했다면 그 자녀의 자녀(즉, 손자녀)가 대신 상속권을 가진다는 사실, 또는 배우자만 있다고 해도 자녀가 없으면 돌아가신 분의 형제자매와 상속을 나눠야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에게 낯설게 들립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한국과 미국의 상속 시스템은 단순히 절차의 차이가 아닌, “가족을 어떻게 정의하는가”에 대한 국가적 철학이 다릅니다. 한국은 법적으로 정해진 혈연 중심의 가족 개념에 따라 상속인을 규정하지만, 미국은 유언장이 있는 경우 혈연보다 개인의 의사가 우선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는 간병인, 절친, 자선단체, 심지어 반려동물에게도 재산을 남길 수 있습니다. 상속 순위보다 ‘의지’가 우선되는 문화인 것이지요.

     

    그렇다면 한국에서는 어떨까요?
    유언장이 없다면 법이 정한 상속 순위에 따라 배우자, 자녀, 부모, 형제자매, 사촌 등 혈연과 혼인 관계가 중심이 됩니다. 이때 배우자는 ‘당연히 모든 것을 상속받는 존재’가 아니라, 항상 다른 상속인과 함께 공동 상속인으로 간주된다는 점도 의외로 많이들 모르고 계십니다. 상속은 단순히 돈이 오가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 안에는 가족의 역사, 관계의 농도, 감정의 깊이가 얽혀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한국과 미국의 상속 순위 제도를 비교하면서, 도대체 누가 상속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그리고 내가 원하는 사람에게 상속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정보를 살펴보겠습니다.

     

     

    2. 한국의 상속 순위 – 순서도, 비율도, 다 정해져 있다

    상속은 흔히 “가족에게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한국에서는 그 ‘가족’이 누구이며, 어느 정도의 권리를 갖는지를 민법이라는 법률이 아주 정확하고 세부적으로 정해두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자녀가 있는 경우에는 자녀가 1순위 상속인이고,
    자녀가 없다면 부모님이나 조부모 같은 직계존속이 그다음 순위를 갖습니다. 형제자매는 3순위, 그마저도 없으면 4촌 이내의 방계혈족에게까지 상속권이 넘어갈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배우자’의 위치입니다. 많은 분들이 “배우자가 전부 다 상속받는 거 아닌가요?”라고 생각하시지만, 민법은 그렇게 단순하게 정리하지 않습니다. 배우자는 독립적인 상속인이 아닙니다.
    항상 ‘공동상속인’으로 분류되며, 다른 법정 상속인과 함께 유산을 나누게 됩니다. 즉, 자녀가 있으면 자녀와 함께, 부모님이 생존해 있으면 부모님과 함께, 심지어 형제자매나 4촌 이내 친척과도 상속을 공동으로 받는 구조입니다.

    상속 순위 상속 대상 예시
    1순위 직계비속 + 배우자 자녀, 손자녀 등
    2순위 직계존속 + 배우자 부모, 조부모 등
    3순위 형제자매 언니, 동생 등
    4순위 4촌 이내 방계혈족 삼촌, 사촌 등

     

     예를 들어 자녀가 2명 있고, 배우자가 있을 경우:

    • 전체 재산을 1.5 : 1 : 1 비율로 나눔
    • 배우자: 3.5분의 1.5 (약 42.86%)
    • 자녀 각각: 3.5분의 1씩 (약 28.57%)

    이 구조는 자녀가 몇 명이든 똑같이 적용되며, 자녀 수가 많을수록 배우자의 몫은 상대적으로 줄어들게 됩니다.

    만약 자녀가 없다면? 그 다음 순위는 부모님입니다. 배우자는 부모님과 함께 상속을 나누게 되며, 이때 비율은 보통 배우자 1.5, 부모님 각각 1로 계산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한 가지 의외의 상황이 발생합니다. 부모님도 이미 돌아가신 경우, 고인의 형제자매들이 상속권을 갖게 됩니다. 이 경우에도 배우자는 형제자매와 공동 상속인이 됩니다. 그래서 배우자가 전부를 상속받기 위해서는, 다른 법정 상속인이 없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게 되는 것입니다.

     

    즉, 한국의 상속 순위는 단순히 “누가 더 가까운 가족인가?”라는 기준이 아니라, 민법상으로 인정된 혈연적 거리와 법적 지위에 따라 계산되고 결정되는 것입니다. 또한, 피상속인의 사망 이후에 유언장이 없고, 상속포기를 신청한 사람도 없는 경우에는 민법이 정한 이 순서와 비율대로 자동으로 상속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물론 유언장이 있으면 그 내용에 따라 조정할 수 있지만, 유언장조차 없다면 이 법정 상속 순위는 ‘가장 객관적인 기준’이 됩니다.

    3. 미국의 상속 순위 – 법보다 ‘유언장’이 먼저입니다

    “상속은 가족 간에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일 아닐까?” 이런 생각은 전 세계적으로 비슷하지만, 그 상속의 ‘방식’은 나라마다 다르게 운영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상속인이 누구인지보다, “돌아가신 분이 생전에 어떤  유언장(Testament or Will)을 남겼는가”가 훨씬 더 중요합니다. 미국의 상속법에서는 유언장이 있으면 그 내용이 법정 상속 순위보다 우선합니다. 다시 말해, 고인이 생전에 작성한 문서 한 장이 배우자, 자녀, 형제자매보다 먼저 효력을 갖습니다.

    예를 들어,

    • “내 전 재산은 반려묘 ‘벨라’에게 넘긴다.” → 유효
    • “자녀에게는 1달러만 남기겠다.” → 가능
    • “30년 돌봐준 간병인에게 절반을 준다.” → 법적으로 실행 가능

    미국의 유언장은 강력한 법적 문서이며, 재산의 소유권을 법이 아니라 ‘본인의 의지’로 넘기는 도구로 여겨집니다.

    그렇다면 유언장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요? 이때는 각 주마다 정해진 법정 상속 순위에 따라 배우자, 자녀, 부모, 형제자매, 기타 친척에게 유산이 배분됩니다. 순위 자체는 한국과 유사하지만, 여기서 미국의 시스템에서 독특한 개념이 하나 등장합니다.

    “왜 미국에서는 배우자가 상속세를 안 내나요?”

    미국의 상속 구조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질문 중 하나가 이겁니다. “배우자도 상속자라면, 상속세를 내야 하지 않나요?”

    그런데 미국에서는 대부분의 경우, 배우자가 상속을 받아도 상속세를 전혀 내지 않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미국은 부부의 재산을 ‘공동의 소유’로 간주하는 문화와 법률 체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부부가 함께 일하고, 함께 모은 재산은 엄밀히 말하면 처음부터 ‘둘의 재산’으로 여겨지고, 한쪽이 사망하더라도 ‘상속’이 아니라 ‘잔존자의 소유권 회복’이라는 개념으로 보게 됩니다.

    이러한 철학은 미국의 Community Property 제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Community Property란?

    Community Property는 주로 미국 서부 주(예: 캘리포니아, 텍사스 등)에서 운영되는 개념으로, 결혼 후에 벌어들인 모든 수입과 자산은 부부 공동의 것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합니다. 즉, 한 배우자의 이름으로 집을 샀다 해도, 실질적으로는 부부 공동 자산으로 간주되며, 그중 한 명이 사망해도 나머지 50%는 애초에 살아 있는 배우자의 몫으로 인정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에서 배우자가 상속을 받을 경우, 그것은 ‘상속’이 아니라 이미 본인의 재산이 완전하게 회복되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상속세가 부과되지 않습니다.

     

    이 점은 한국과 가장 다른 부분입니다. 한국에서는 부부가 재산을 공동으로 사용하더라도 법적으로는 ‘각자의 명의’에 따라 소유권이 나뉘며, 사망 시에는 엄연히 '상속'이라는 과정을 통해 재산을 이전해야 합니다. 따라서 배우자 역시 다른 상속인과 마찬가지로 상속세 납부 대상이 되는 것이지요.

     

    미국에서 배우자가 상속세를 내지 않는 이유가 단순한 배려나 예외가 아니라, 애초에 재산의 성격 자체가 다르게 정의되기 때문입니다. “이건 내 배우자가 평생 함께 벌고 관리한 것이므로, 당연히 남은 사람의 몫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미국식 상속 철학의 기본입니다. 이 개념을 알고 나면 미국에서 ‘배우자는 전액 면세’라는 이유를 이해하기 쉽습니다.

    4. 미국은 반려동물도 상속을 받는다?

    “미국에서는 고양이도 상속받을 수 있어요.” 처음 들으면 농담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단순한 도시 전설이 아니라, 실제 법적으로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미국에서는 유언장을 통해 간병인, 친구, 종교단체 등 ‘가족이 아닌 존재’에게도 재산을 물려줄 수 있다고 앞에서 말씀드렸는데요, 그 자유로운 상속 문화는 반려동물에게까지 확대됩니다.

    세기의 반려견, 트러블(Trouble)

    미국의 대표적인 반려동물 상속 사례는 2007년 화장품 재벌 리오나 헴슬리(Leona Helmsley) 부인이 남긴 ‘트러블(Trouble)’이라는 몰티즈 강아지입니다. 헴슬리 부인은 생전의 유언장을 통해 “내 재산 중 1,200만 달러는 트러블의 생활비로 쓴다”라고 명시했습니다.
    2025년 환율로 약 160~170억 원에 달하는 금액입니다. 그녀는 트러블의 식사, 미용, 경호, 병원비까지 전담할 신탁을 설정했고,
    관리자는 따로 지정해 두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미국 언론에 보도되자 “세상에, 개가 나보다 부자야?” “헴슬리 여사가 제일 사랑했던 건 가족이 아니라 강아지였네.” 등등의 반응이 쏟아졌죠. 결국 트러블은 법적으로 정식 상속인은 아니지만, 신탁을 통해 재산을 이용할 수 있는 주체로 인정받았습니다. 그 돈은 트러블의 남은 생을 풍족하게 채웠고, 강아지가 세상을 떠난 뒤 남은 재산은 동물보호재단에 기부되었습니다.

    Pet Trust: 동물도 ‘유산을 상속할 권리자’가 된다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Pet Trust(펫 트러스트)라는 신탁 제도를 통해 반려동물에게 직접 유산을 물려주는 것은 물론, 그 유산을 관리하는 사람까지 법적으로 지정할 수 있는 구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1. 유언장에 “내 고양이에게 1만 달러를 남긴다”라고 씀
    2. 그 돈은 고양이가 직접 쓰는 것이 아니라, 고양이를 돌보는 ‘지정 수탁자(trustee)’가 관리함
    3. 고양이가 살아 있는 동안 먹이, 병원비, 미용비, 장난감 등으로 사용됨
    4. 고양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후, 남은 돈은 보호소나 재단에 기부됨

    이 제도는 단순한 웃음거리가 아닙니다. 미국에서는 실제로 “내 유산이 다른사람보다 날 더 사랑해 준 존재에게 가야 한다”는
    사적인 유언 문화가 강하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족보다 먼저 상속받는 존재들

    흥미롭게도, 반려동물 외에도 간병인, 절친, 룸메이트, 교회 지인, 유튜브 채널 팬클럽(!) 등에게 재산을 남긴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한 노년 여성은 자신을 수년간 돌봐준 이웃집 17세 소년에게 전 재산 5만 달러를 유산으로 남겼고, 또 어떤 시인은 자신이 좋아하던 지역 도서관의 사서 이름으로 적금을 설정해 남기기도 했습니다.

     

    미국에서는 유산이 ‘부의 전수’가 아니라 ‘삶의 마지막 메시지’로 해석되기 때문에, 그 메시지를 꼭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만 전달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일반적입니다.

     

     

    한국과 미국의 결정적인 차이

    한국에서도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현행법상으로는 어렵습니다.

    • 반려동물은 법적으로 상속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 사람만 상속의 주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유산을 남기려면 간접적인 방법(예: 관리비용을 자녀에게 맡김)만 가능합니다.
    • 또한, 특별 연고자 개념도 법적 상속 순위에 없기 때문에, 혈연이 아닌 사람에게는 반드시 유언장을 써야 하며, 그마저도 가족의 반발이나 법적 다툼이 생기면 효력이 약해질 수 있습니다.

    미국은 상속을 통해 “나의 감정과 기억을 전달할 자유”를 보장합니다. 그 자유는 법정 상속 순위보다 위에 있으며, 때로는 가장 사랑했던 존재가 강아지일 수도 있는 세상을 보여줍니다. 상속이 ‘법적 의무’가 아니라 ‘인생의 마지막 인사말’이라면, 그 말을 누구에게 건네고 싶은지는 당연히 내가 정할 수 있어야겠지요.

    5. 결론

    상속은 단순히 재산을 분배하는 일이 아닙니다. 누군가의 인생이 끝나고, 남겨진 무언가가 다른 사람에게 전해지는 순간.
    그 속에는 한 사람의 삶이 품었던 관계와 감정, 신뢰와 책임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상속은 종종 ‘법적인 문제’ 이전에 ‘정서적인 유산’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는 상속의 기준이 명확합니다. 피를 나눈 자녀, 부모, 형제자매, 4촌 이내 친족 등, 민법에 의해 법정 상속인이 정해지고, 배우자는 그들과 함께 재산을 나누는 공동 상속인으로 분류됩니다. 여기엔 간병인도, 친구도, 반려동물도 없습니다. 심지어 수십 년을 함께 살아온 사실혼 배우자조차도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면 법적으로는 상속인이 아닙니다.

     

    반면, 미국에서는 상속이 보다 넓은 개념으로 이해됩니다. 가족이 아니라도, 생전 오랫동안 돌봐준 간병인이나,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절 도움을 줬던 친구, 혹은 그저 자신의 삶에 의미를 준 존재에게 유산을 남기고자 할 때, 유언장을 통해 그 뜻을 법적으로 실현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반려동물에게도 신탁을 통해 유산을 남길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번 쯤 생각하게 됩니다. ‘상속의 자격’이란 정말 혈연으로만 정해져야 하는 걸까요? 평생을 함께 살아온 이웃, 마지막까지 곁을 지킨 요양보호사, 경제적으로는 아무런 연관이 없어도 심리적 유대는 누구보다 강했던 존재에게 그 마음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은 너무나 자연스럽지 않나요?

     

    상속은 법이 정해주는 대로 자동으로 흘러가는 흐름이기도 하지만, 그 흐름을 내 뜻대로, 내 감정과 가치관대로 방향 지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유언장’이라는 선택지입니다. 미국의 유언장 문화는 이 점에서 강력한 도구이자 개인의 목소리를 법적 절차 안에서 보장하는 시스템입니다.

     

    한국도 최근에는 ‘유언장 쓰기’에 대한 관심이 점차 높아지고 있습니다. 자녀가 없는 부부, 재혼 가정, 독신 가구, 혹은 의미 있는 사회단체에 유산 일부를 남기고자 하는 사람들은 더 이상 상속을 ‘법이 정하는 순서’에만 맡기지 않으려 합니다. 상속은 더 이상 ‘누구와 피를 나눴는가’에 의해 정의되는 시대를 지나, ‘내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겼던 존재에게 무엇을 남기고 싶은가’를 묻는 질문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