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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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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고인석에 앉아 있는 교복 차림의 소년 실루엣과 재판장의 어두운 법정, 판결을 기다리는 무거운 분위기의 장면
    소년이라는 면죄부

    소년 범죄, 한국과 미국의 법 비교

    1. 서론

    며칠 전, 한 중학생이 또래 친구를 집단으로 폭행해 뇌출혈과 전치 수 주의 중상을 입힌 사건이 보도되었습니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가해 학생이 사건 직후 경찰에게 “어차피 감옥엔 안 가요”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이 짧은 한마디에는 한국 소년법의 실질적 한계와, 법이 만들어낸 집단적 무감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한국의 현행법상 만 14세 미만은 형사미성년자로 분류되어, 어떤 범죄를 저질러도 형사처벌을 받지 않습니다. 이들은 '촉법소년'이라는 이름 아래 형벌이 아닌 보호처분만 받을 수 있으며, 수개월 이내에 다시 사회로 복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저지르는 행위는 더 이상 단순한 ‘비행’ 수준이 아닙니다. 성폭행, 협박, 감금, 살인미수, 심지어는 범행 영상 유포까지. 그 잔혹성과 계획성은 성인 강력범죄 못지않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범죄가 단발성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촉법소년이라는 이름에 숨어 반복적인 범행을 저지르며, 법적 처벌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오히려 "무기처럼 악용"하는 경우도 늘고 있습니다. 일부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그냥 14살 전에는 다 해도 괜찮다”는 말이 일종의 통념처럼 퍼지고 있다고도 합니다. 실제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촉법소년 되는 법”, “형벌 피하는 꿀팁” 같은 검색어까지 등장할 정도입니다.

     

    소년이라는 이유로, 법은 정말 이들에게 모든 책임을 면제해 주어야 할까요? 피해자의 상처와 고통, 피해자 가족의 삶은 누가 보상합니까? 이 글에서는 단순한 구조적 문제 분석을 넘어서, 실제 촉법소년·미성년자 강력범죄 사건을 중심으로 한국과 미국의 법적 대응을 비교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소년을 위한 보호냐, 피해자를 위한 정의냐, 그 기준에 대한 새로운 성찰입니다.

     

     

    2. 한국의 소년법

    2022년, 광주의 한 중학교에서 발생한 사건은 전국을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중학생 3명이 또래를 협박해 인근 야산으로 끌고 가 무차별 폭행을 가하고, 그 장면을 촬영해 단체 채팅방에 공유한 사건이었습니다. 피해자는 전치 6주의 중상을 입고, 심각한 정신적 외상을 겪었으며, 부모는 “아이가 사람을 무서워하게 되었다”고 오열했습니다.

    하지만 가해자 대부분은 만 14세 미만의 촉법소년이었습니다.

     

    이들은 결국 광주가정법원 2022도140 사건에서, 형사처벌이 아닌 보호관찰 및 6개월 소년원 송치라는 보호처분을 받았습니다.
    검찰은 가해자들의 반성 부족, 재범 가능성, 피해자 회복의 어려움을 강조했지만, 법원은 “소년의 교화 가능성을 고려했다”며 실형을 선고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지금, 다시 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반면 피해자는 아직도 치료를 받고 있고, 외출조차 힘들어하는 상태입니다. 이 사건처럼 촉법소년들은 법의 관대함을 ‘면죄부’처럼 받아들이는 경향을 보입니다. 실제로 해당 사건의 가해자 중 한 명은 SNS에 “나 그냥 보호처분이야ㅋㅋ”,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일상 복귀”라는 내용의 글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단순히 법적 허점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 법을 조롱한 것에 가깝습니다.

     

    또 다른 예는 서울중앙지방법원 2021도 2596 판례입니다.
    이 사건에서는 촉법소년 2명이 인터넷에서 알게 된 10대 여성에게 접근하여 협박 및 감금, 성적 학대를 가하였고, 피해자는 자살 시도 후 병원에 이송되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이들에게도 2호 보호처분(가정교육 위탁)만을 내렸습니다.
    판결문에는 “소년의 성장 가능성과 가정환경 고려”라는 문구가 반복적으로 등장하지만, 피해자 보호에 대한 언급은 고작 세 줄에 불과했습니다.

     

    이러한 현실은 피해자 가족뿐 아니라 국민적 분노를 불러일으킵니다. 인터넷에는 “14살 전이면 뭐든지 해도 되는 거냐”, “이게 법이냐, 방패냐”는 댓글이 쏟아집니다. 특히 일선 학교에서는 촉법소년 관련 사고 발생 시 학교 차원에서도 적극 개입이 어렵고, 가해자가 교실로 복귀하는 일이 흔하다는 점에서, 2차 피해 또한 빈번합니다.

     

    이처럼 소년법은 보호를 목적으로 설계되었지만, 현실에서는 피해자를 방치하고 가해자에게 기회를 반복해서 부여하는 구조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사회는 점점 “법이 보호하지 않는 피해자”를 양산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질문은 점점 더 선명해집니다.

    “소년법은 지금, 누구를 위한 법입니까?”

    3. 미국의 소년법

    미국의 형사사법체계는 연방제 국가 특성상 각 주마다 상이한 기준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소년범죄에 있어 공통된 철학은 분명합니다. “나이는 법적 고려 대상이 될 수 있으나, 죄의 무게를 대신하지는 않는다”는 원칙입니다. 특히 계획적이고 폭력적인 강력범죄에 있어서는, 미성년자라 하더라도 성인과 동일한 처벌이 이루어지는 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미국 대부분의 주에서는 만 13세에서 15세 사이의 소년이 살인이나 성폭행, 중대한 폭력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검사의 판단이나 판사의 재량에 따라 성인 형사법정으로 사건을 이관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를 "transfer to adult court" 또는 "waiver of juvenile jurisdiction"이라고 하며, 이관 후에는 일반 성인 피고인과 같은 형사재판 절차를 따르게 됩니다.

     

    이러한 접근은 단지 형벌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소년범의 행위가 사회에 미치는 실질적 피해를 외면하지 않겠다는 법의 태도를 반영하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 판례가 바로 Lionel Tate 사건 (플로리다, 1999년)입니다.

     

     

    [사례] State of Florida v. Lionel Tate, Case No. 99-7433 CF 10A

    당시 12세였던 Lionel Tate는 어머니가 돌보던 6세 여자아이를 상대로 WWE 레슬링 기술을 모방해 반복적으로 가격했고, 피해자는 결국 사망하였습니다. 검찰은 이 사건을 살인 1급 혐의로 기소했고, 플로리다 주 법원은 그를 성인과 동일하게 기소 및 재판하여, 2001년 종신형(무기징역)을 선고하였습니다.

    물론 이후 항소 및 사회적 반발로 인해 2004년 감형되었고, 소년원 대신 보호관찰로 전환된 적도 있지만, 이 사건은 미국 사회에 “소년이라 해도 예외는 없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테이트 사건 이후에도 유사한 형식의 성인 이관 기소가 급증하였고, 이는 단순한 선례가 아닌 형사정책의 흐름 자체를 바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례] State of Wisconsin v. Anissa Weier & Morgan Geyser (2014)

    미국 위스콘신 주에서는 12세 소녀 두 명이 인터넷 괴담 캐릭터 '슬렌더맨(Slenderman)'에 영향을 받아, 또래 친구를 19차례 칼로 찔러 살해하려다 실패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피해자는 기적적으로 생존했지만, 이 사건은 전국적 공포를 일으켰고, 법원은 이들을 성인 법정으로 이관하여 재판에 회부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가해자들은 각각 최소 25년, 최대 종신형까지 가능한 정신병원 수감 판결을 받았습니다. 이 판결은 단순히 형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들이 다시 사회로 복귀했을 때의 재범 가능성과 공공의 안전을 고려한 조치였다는 점에서, 미국 소년법의 구조적 방향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됩니다.

     

    미국은 소년범에 대한 예방과 처벌의 균형을 위해 소년 전담 법원을 운영하면서도, 강력범죄에 대해서는 단호한 형사처벌이 가능하도록 이중 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또한 Restorative Justice Program(회복적 사법)이나 재범 방지 교육, 보호관찰 시스템의 내실화를 통해, 단순히 처벌에만 의존하지 않고 구조적인 재사회화를 위한 노력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강력범죄에 한해서는 피해자 중심 원칙을 철저히 지킵니다. 피해자가 평생 트라우마에 시달려야 하는데, 가해자는 “어렸다”는 이유로 모든 책임에서 자유롭다면, 그것이 과연 법이 보호하려는 정의일 수 있는지 묻습니다. 미국은 그 질문 앞에서 법의 중립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4. 비교 분석

    소년법이 존재하는 목적은 분명합니다. 범죄를 저지른 미성년자에게도 갱생과 재사회화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사회적 피해를 줄이고 미래를 보호하자는 취지입니다. 하지만 이 명분은 현실의 법 적용 과정에서 매우 다른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한국과 미국은 같은 소년법이라는 제도를 운용하면서도, 그 태도와 초점, 궁극적인 보호 대상에 있어 차이를 보입니다.

    한국: ‘소년’이라는 이유로 가해자 중심에 서 있는 법

    한국의 소년법 체계는 기본적으로 “어린 사람은 변화할 수 있다”는 교화 중심의 철학을 기반으로 합니다. 그래서 형사처벌이 가능한 연령인 만 14세 이상이 되기 전까지는, 어떤 범죄를 저질러도 형벌 대신 보호처분만 받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현실에서 촉법소년이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명백한 강력범죄를 저지르고 있음에도, 법이 이를 끝내 '소년'이라는 이유로 면책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살인미수나 성범죄, 감금, 흉기 난동과 같은 중대한 범죄에 대해서도 한국은 “아직 미성숙한 존재이므로, 교화의 기회를 우선해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합니다.

     

    그 결과 피해자는 평생 정신적 트라우마를 겪으며 살아가야 하고, 가해자는 몇 개월 안에 아무런 기록도 없이 사회로 복귀합니다. 일부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형사미성년자이기 때문에 아무리 해도 실형은 없다”며 그 법적 보호망을 스스로의 ‘면죄부’로 악용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미국: 피해자 중심의 원칙과 선택적 엄정주의

    반면 미국의 소년법 체계는 훨씬 더 피해자 중심입니다. 소년에게도 교화의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행위의 위법성과 범죄의 계획성, 폭력성이 일정 기준을 넘을 경우에는 성인과 동일한 형사처벌 대상으로 즉각 전환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한국은 “나이가 책임을 가른다”는 관점을 취하지만, 미국은 “행위의 무게가 책임을 결정한다”는 철학을 따릅니다. 이러한 원칙은 성인 이관 제도, 판사의 판단 유연성, 피해자 보호 중심 판결 등 제도 전반에 녹아 있습니다.

    법은 정의를 실현하는 도구입니다. 그러나 정의가 오직 가해자의 '미래'만을 고려하고, 피해자의 '현재'를 외면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균형 잡힌 법이 아닐 것입니다.

    구조적 차이 요약 비교

    구분 한국 미국
    형사미성년 기준 만 14세 미만 주마다 다르나 보통 만 10~13세
    중범죄 시 성인 기소 사실상 없음 계획범죄 시 일반적으로 가능
    법적 초점 가해자 교화 중심 피해자 보호 + 교화 병행
    실형 가능성 매우 낮음 조건 충족 시 실형 가능
    사후관리 체계 보호처분 이후 관리 느슨 재범 방지 시스템 연계 강함

     

    이처럼 한국은 법이 너무도 ‘소년’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생각해봐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피해자는 울고 있고, 가해자는 웃고 있습니다. 법은 누구의 편에 서 있어야 합니까?

     

     

    5. 결론

    소년법은 태생부터 따뜻한 의도를 품고 있습니다. 아직 성장 중인 미성년자에게는 엄중한 처벌보다 교화와 회복의 기회를 제공하자는 인류적 신념이 담겨 있었고, 이는 어느 사회에서든 반드시 필요한 가치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기회’가 반복되는 피해를 외면한 채 가해자에게만 무한정 주어지고 있다는 현실입니다.

     

    실제로 많은 촉법소년들은 자신이 형사미성년자라는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으며, 그것이 법적 방패막이 되어준다는 점도 인식하고 있습니다. “우린 감옥 안 간다”, “14살 전까진 뭐든 해도 된다”는 말이 농담이 아니라 전략처럼 쓰이는 사회, 그 속에서 피해자는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외면당하고 고립된 현실에 놓여 있습니다.

     

    소년이라는 이유만으로 형사책임에서 완전히 면제된 채, 몇 달 후면 아무 기록 없이 일상으로 복귀하는 가해자, 그리고 그 뒤에서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끌어안고 살아가는 피해자와 가족들. 이런 구조는 결코 건강한 법질서라고 할 수 없습니다. 물론 모든 소년범이 악의적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실수로 시작된 비행, 가정환경이나 정신적 문제로 인한 일탈, 보호가 필요한 사각지대의 아이들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들에게는 분명히 기회의 문을 열어줄 사회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정확히 선을 그어야 합니다.

     

    소년이라는 이유로 죄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소년이기 때문에 책임을 다르게 물을 수는 있어도, 면제되어서는 안 됩니다.

    미국은 “회복 가능성”을 인정하되, 그 전제조건으로 “죄의 무게에 상응하는 책임”을 분명히 합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법은 선한 의도를 지니되, 피해자의 고통까지 외면해서는 안 된다.”

    지금 한국의 소년법은 가해자 중심의 선의를 유지하고 있지만, 그 선의가 반복되는 피해와 사회적 불신, 피해자 고립이라는 그림자를 낳고 있다면 그 법은 반드시 재검토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기로에 서 있습니다.

    • 소년이라는 이유로 면죄부를 줄 것인가,
    • 아니면 피해자의 상처를 외면하지 않는 법의 정의를 세울 것인가.

    소년법은 폐지되어야 하는 법이 아닙니다. 하지만 분명히 지금의 방식대로는 정의롭지 않은 법입니다. 피해자의 삶을 외면한 법은 결코 공정할 수 없고, 가해자의 나이만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법은 더는 사회를 보호할 수 없습니다. “소년이라는 말 뒤에 숨어도 되는 범죄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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