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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에 창밖에서 방 안을 들여다보는 인물의 어두운 실루엣. 방 안은 불이 켜져 있고, 인물은 창문 바깥 어둠 속에 서 있으며 실내를 응시 중. 인물은 보이지 않거나 흐릿하게 표현됨.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본다...

    1. 서론: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본다

    그녀는 스스로 세운 스케줄보다 5분씩 앞당겨 지하철역을 나섰습니다. 스마트폰의 위치 공유를 꺼두었고, 뒤돌아보는 습관이 몸에 밴 지 오래되었습니다. ‘그 사람’이 다시 나타날까 봐, 다시 문자를 보낼까 봐, 또 찾아와 문을 두드릴까 봐 두려워하며 하루하루를 살았습니다. 그러나 경찰은 말했습니다. “직접적인 폭력이 없으니 개입할 수 없습니다.” 그녀는 수차례 신고하였고, 경찰은 그때마다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녀는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2022년 9월,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화장실에서 28세의 여성 역무원이었던 그녀는 자신을 스토킹 하던 전 동료에게 흉기에 찔려 사망하였습니다. 범인은 범행 전날까지도 피해자를 협박하였고, 수개월 전부터 법적 절차가 진행되어 구속영장이 청구되었으며, 접근금지 명령도 내려졌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제도도 그녀의 생명을 지켜내지 못하였습니다.

     

    스토킹은 감정의 표현이 아닙니다. 그것은 관계의 강요이며, 일방적인 지배욕입니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이를 “사소한 다툼”, “연인의 갈등”, “일시적인 감정 폭발” 정도로 치부해 왔습니다. 심지어 피해자에게 “왜 그렇게까지 반응했는가”라고 탓하는 시선도 존재하였습니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말합니다. “처음엔 선량한 얼굴로 꽃을 줬고, 그다음엔 선물을 보냈으며, 그다음엔 싫다고 거부 해도 집요하게 따라왔고, 마지막엔 돌변하여 칼을 들었습니다.” 

     

    우리 사회는 스토킹을 아직도 살인에 이르지 않은 행동으로 구분하여 생각합니다. 그러나 통계는 말합니다. 스토킹 피해자 중 다수는 지속적인 위협 속에서 일상을 잃고, 일부는 실제로 살인의 피해자가 됩니다. 피해자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법이 개입하지 않으며, 죽고 나서야 비로소 법이 반응합니다.

    이제는 질문해야 합니다. 스토킹은 정말로 살인의 예고가 아닌지, 그리고 한국과 미국의 법은 그 경계에서 어디까지 대응할 수 있는지를 말입니다.

     

     

    2. 한국: 스토킹처벌법의 한계와 반복된 비극

    2021년 10월, 한국은 스토킹 처벌을 위한 독립법률인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였습니다. 이는 기존의 경범죄 수준에서 벗어나 스토킹을 별개의 중대 범죄로 다룬다는 점에서 중요한 진전이었습니다. 그러나 법 시행 이후에도 피해자들이 계속 목숨을 잃고 있다는 사실은 이 법이 실제로는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첫 번째 문제는 처벌 수위의 낮음에 있습니다. 많은 스토킹 가해자들이 벌금형이나 집행유예에 그치는 판결을 받습니다. 초범이라는 이유, 반성문 제출, 피해자와의 합의 시도 등을 이유로 감형이 이루어지고, 가해자들은 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피해자에게 접근할 수 있는 구조 안에 놓여 있습니다.

     

    두 번째 문제는 긴급 대응 체계의 부재입니다. 피해자가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더라도, 현행법상 긴급체포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위협성과 반복성을 입증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증거를 확보하는 과정은 어렵고 복잡하며, 그 사이 가해자는 피해자의 문 앞에 칼을 들고 나타날 수 있습니다.

     

    신당역 역무원 살인 사건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피해자는 반복적으로 보호를 요청하였고, 접근금지 명령이 내려졌음에도 불구하고, 가해자는 피해자의 일정을 미리 파악하고 계획적으로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그리고 사건이 발생한 후에야 언론과 대중의 관심이 집중되었습니다. 이러한 사건이 반복될 때마다 우리는 같은 말을 합니다. “예견된 비극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피해자들은 질문합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스토킹 피해자가 나와야 법이 움직이는가?” 한국의 법은 여전히 “직접적인 폭력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개입할 수 없다”는 논리에 갇혀 있습니다.

    3. 미국: 접근금지 명령과 경찰의 즉시 대응 시스템

    미국은 스토킹 범죄를 ‘연애 갈등’이 아닌 ‘잠재적 살인 시도’로 규정합니다. 이것은 법의 태도에서 명확히 드러납니다.
    미국은 대부분의 주에서 스토킹을 중범죄(felony)로 분류하고 있으며, 피해자가 위협을 느끼는 순간 곧바로 접근금지 명령(restraining order) 또는 비접촉 명령(no-contact order)을 법원이 발부할 수 있습니다. 그 명령이 발부되면, 그 이후부터는 단 한 번의 위반으로도 즉각 체포가 가능합니다. 한국과는 차원이 다른 대응 구조입니다.

     

    실제 사례를 살펴보면,  미국 워싱턴 D.C. 에 사는 A 씨는 전 애인의 반복적인 메시지, 주거지 앞 출현 등을 이유로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경찰은 당일 사건 보고서를 작성한 후, 즉시 법원에 긴급 보호명령을 신청했습니다. 이후 48시간 내에 임시 접근금지 명령이 발부되었고, 가해자는 “피해자 500m 이내 접근 금지, 전화, 문자, 이메일 포함한 모든 연락 차단” 명령을 받았습니다.

     

    이 명령을 어길 시 경찰은 체포영장 없이도 즉시 구속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게 됩니다. 실제로 해당 가해자는 문자 한 통을 추가로 보냈다는 이유로 구속되었고, 판사는 “이 사건은 살인으로 발전할 수 있는 위험성을 안고 있었다”라고 판시했습니다.

     

    또한 미국은 스토킹과 가정폭력 사이의 경계를 법적으로 명확히 하지 않습니다. 이는 스토킹이 단순한 감정의 문제나 연애 감정의 연장선이 아니라, 전형적인 권력 남용과 통제 폭력의 한 형태로 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경찰 교육에서도 스토킹은 살인 전 단계로 간주되고, 예방의 최전선으로 분류됩니다.

     

    이런 시스템은 피해자 입장에서는 “내가 죽기 전까지는 아무도 돕지 않는다”는 한국의 구조와는 매우 다른 대응 체계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물론 미국이라고 완벽하진 않습니다. 일부 주는 여전히 민사 절차 중심이고, 접근금지 명령이 잘 집행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법률 구조상, 피해자가 위협을 느끼는 순간부터 가해자에게 실질적 제약을 걸 수 있는 권한이 명문화되어 있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스토킹은 미국 법체계 안에서 단순한 불쾌함이 아닌 공공의 위협으로 간주됩니다. 그 결과, 경찰은 ‘살인을 막기 위해’ 움직이고, 법은 ‘살인을 예측해서’ 반응합니다. 한국과는 분명히 다른 정의를 구현하는 방식입니다.

     

     

    4. 비교 분석

    스토킹은 시작부터 살인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단계로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한 개인의 집착이 아닌, 사회가 묵인한 통제의 시스템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한국과 미국은 이 예고된 폭력을 어떻게 다르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한국은 스토킹을 “가해자의 행동 중심”으로 판단합니다. 즉, 물리적인 폭력이나 위법 행위가 있었는지에 따라 개입 수위가 결정됩니다. 피해자가 위협을 느끼고 있더라도, 증거가 없으면 “법적으로 개입할 수 없다”는 논리가 적용됩니다. 접근금지 명령도 존재하지만, 그 자체에 구속력이 약하고, 위반 시에도 대부분 실질적인 제재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가해자는 "너무 가까이 가지 말라"는 요청을 무시한 채, 여전히 피해자의 근처를 맴돌고 있습니다.

     

    반면 미국은 “피해자의 감정과 반응 중심”으로 법을 설계합니다. 즉, 피해자가 두려움을 느꼈는가, 반복적으로 정신적 불안을 겪고 있는가를 우선적으로 판단합니다. 가해자의 실제 행위보다도, 피해자가 느낀 위협이 법적 개입의 출발점이 됩니다. 이는 법이 '행위'보다 '위험'을 다룰 줄 알아야 한다는 구조적 인식의 차이에서 나타납니다. 

     

    미국은 접근금지 명령 위반 시 즉시 구속이 가능한 반면, 한국은 피해자가 폭행을 당하거나 사망한 이후에야 법이 움직입니다. 이것은 제도의 차이가 아니라, 정의가 향하는 방향의 차이입니다. 또한 미국은 경찰관 교육에서부터 스토킹은 ‘살인의 전조’로 규정되어 학습하고 훈련합니다. 경찰은 “폭력이 발생하기 전, 법을 통해 위험을 차단해야 한다”는 임무를 부여받습니다.

     

    한국은 여전히 경찰이 “직접적인 위법이 없으면 개입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합니다. 이 차이는 목숨을 지킬 수 있는가 없는가의 큰 차이로 이어집니다. 스토킹은 대부분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고통’과 ‘법의 무관심’으로 끝이 납니다. 그리고 피해자가 폭행을 당하거나 죽고 나면, 사람들은 말합니다. “예고된 비극이었다.” 그 말은 다시 우리에게 묻습니다. “그러면 그 비극을 왜 막지 못했는가?”

    5. 결론

    한국 사회는 지금까지 수많은 스토킹 피해자들의 죽음을 목격해 왔습니다. 그중 상당수는 경찰에 신고한 이력이 있었고, 법적 보호조치를 요청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에 이르렀다는 것은, 현재의 법과 제도가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했다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법은 종종 늦습니다. 하지만 생명 앞에서 늦는다는 것은 곧 피해자에게 사망신고서를 발급하는 것과 같습니다.

     

    스토킹이 반복되면 살인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사실은 이제 통계적으로도 확인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은 "별일 아닌데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일 수도 있어"라는 말로, 피해자의 공포를 가볍게 여깁니다. 그 결과, 피해자는 법 앞에서도 외롭고, 죽음 앞에서도 혼자가 됩니다. 미국의 법이 완벽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미국은 적어도 스토킹 피해자가 “끔찍한 일을 당하지 않게 하려는 법”을 실현하려 하고 있습니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피해자가 "극단적인 상황에 몰리고 난 후에야 움직이는 법”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법이 보호하는 대상이 범죄자의 인권만이 아닌, 진짜로 위협받는 피해자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누군가의 고통스럽고 외로운 죽음이 있어야만 개입하는 사회, 그런 사회는 더 이상 법이 중립에 있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법이 계속되는 한, 다음 피해자는 언제든지 우리 주변에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지금이 바로, 스토킹에 대한 법의 시점을 '흉악 범죄의 예고' 단계로 바꿔야 할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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